대전 중구에서 추천하는 중구 10경으로 여러분을 안내해드립니다.
대전 중구에 오시면 보문산 자락에 우리 조상의 뿌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뿌리공원이 ‘효’의 테마를 주제로 각 성씨별로 조형물이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주랜드+플라워랜드+조이랜드+버드랜드”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대전오월드가 있다.
또 전국에서 알아주는 효문화마을관리원과 역사적 유서가 깊은 봉소루와 유회당, 여경암, 창제숭절사, 거업재가 있다.
더욱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신 민족운동의 선구자이자 독립운동가이신 단재 신채호선생의 생가도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죠, 대전에 오시면 꼭 드시고 가셔야 하는 칼국수와 두부두루치기 그리고 삼계탕, 튀김 소보루가 유명합니다.
●중구 제1경=뿌리공원
뿌리공원은 민과 관이 유기적인 협조체계로 조성된 전국 유일의 "효" 테마공원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되찾을 수 있는 성씨별 조형물과 사신도 및 12지지를 형상화한 뿌리 깊은 샘물, 각종 행사를 할 수 있는 수변무대, 잔디 광장과 공원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 팔각 정자뿐만 아니라 산림욕장, 자연관찰원, 야간경관조명, 은하수 터널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추어진 체험학습의 산 교육장이다.
뿌리공원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하여 경로효친 사상을 함양시키고 한겨레의 자손임을 일깨우기 위하여 세계 최초로 성씨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운 충효의 산교육장으로 특히 10월 뿌리축제가 열리게 되면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로 종친회에서 이곳을 찾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국조는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시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성은 삼국시대 왕족과 일부 귀족 중심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고려 초기부터 귀족은 물론 평민도 성과 본관을 쓰게 되었다.
성은 조선조 세종 때 세종실록지리지에 265성, 영조 때 도곡 총설에 298성 1930년 국세조사 결과 250성이던 것이 2015년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5,582성 36,744본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과 본관은 가문을 나타내고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로 이루어져 있어 성명으로 개인의 구별은 물론 가문계대까지 알 수 있다. 이곳 뿌리공원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숭조위선의 정신으로 화목과 우의를 돈독히 하고 충효의 실천으로 한민족의 얼을 자손만대에 길이 빛내야 할 것이다.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 47 뿌리공원
●중구 제2경=대전오월드
대전 O!WORLD는 “주랜드+플라워랜드+조이랜드+버드랜드”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종합테마공원이다.
2002년 5월 5일 개장한 대전동물원과 2009년 5월 1일 개장한 플라워랜드를 통합하였으며, 2016년 9월 30일 버드랜드를 오픈하여, 총 783,897㎡(동물원 608,283 ㎡)로 확장된 중부권 이남 최대규모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이 되면 어린이와 부모님을 모신 가족들의 관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특히 5월 총에는 주말이면 차량 출입이 어려울 정도로 방문객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대전광역시 중구 사정공원로 70
●중구 제3경=보문산
보문산 공원은 중구 대사동 외 11개동 일원으로, 해발 457.6m인 보문산(寶文山)은 대전의 남쪽 시 중심부에 근접해 있는 곳으로 보물이 묻혀있다 하여 '보물산'으로 부르다가 보문산으로 되었다는 유래가 있으며, 공원 내 약수터가 많고 봄에는 진달래와 벚꽃이 많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고운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대전의 대표 산이다.
보문산성과 보문사지, 야외음악당, 전망대가 있으며, 시루봉길 등 10여 개의 등산로와 20여 곳의 약수터가 골짜기 마다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특히 보문산성은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10호로 지난 1992년 12월 백제시대 산성 중 전국 최초로 복원되었습니다. 둘레가 280m인 퇴뫼식 석축산성으로 성안에 있는 장대루에 오르면 광활한 시가지의 발전상이 한눈에 들어와 장관을 이룬다.
보문산에서는 등산과 함께 위락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사정공원의 실내 롤러스케이트장, 축구장을 비롯한 각종 레포츠 시설, 야외음악당, 청년광장 등이 있으며, 시루봉 아래 고촉사에는 미륵상을 닮은 자연 암석이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보문산공원로 446
●중구 제4경=효문화마을관리원
효문화마을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뿌리공원과 조화를 이룬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최신 휴양복지 시설을 갖추고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가족, 친지들과 함께 노후 생활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내실 수 있도록 만들어진 종합휴양 복지시설이다.
효문화마을은 국토중심 효문화체험 진흥공간으로 어르신과 청소년, 가족 그리고 단체가 함께 어우러지며 민족전통인 효를 계승하는 여가복지 시설이다.
효문화 정신과 가치 그리고 의미를 후대에 계승 발전시키는 교육의 장이다.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와 가족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효체험과 소통의 장이다.
다양한 쉼터와 산책 코스가 있어 자연을 만끽하며 힐링과 가족, 단체 숙박이 가능한 휴식의 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로 47
●중구 제5경=봉소루
석교동에 있는 봉소루는 조선 인조 때 장례원 판결사를 지낸 학자이며 교육자인 남분붕(1607~1674)선생이 학문을 가르치던 서재로써 봉소의 뜻은 '새들의 보금자리' 라는 뜻으로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도장임을 가리킨다.
석교동의 봉무산(鳳舞山) 언덕에 봉소재(鳳巢齋) 남분붕(南奮鵬, 1605∼1674)이 강학소를 지어 후학을 양성하던 유적입니다. 남분붕의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숙우(叔雨), 호는 봉소재(鳳巢齋)로서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학통을 이어 의리를 진작시키고 선비들의 슬기와 재능을 널리 열어주었으며 사후 형조참의를 추증받았다.
봉소루의 명칭은 원래 남분붕의 호에서 취하여 봉소재라고도 불렀습니다. 봉소(鳳巢)는 봉황새의 보금자리라는 뜻으로 봉소재(鳳巢齋)는 후진을 양성하는 교육도장(敎育道場)이라는 말이다.
숙종 40년(1714)과 영조 34년(1758)에 중수한 기록이 보이며, 뒤에 있는 안채는 ㄱ자형으로 윗방, 대청, 안방, 부엌이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봉소루로 2
●중구 제6경=유회당
유회당은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권이진(1668년∼1734년)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이다. 유회란 중국 명나라 말기의 학자 전목제의 글에서 따온 것으로 부모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유회당과 기궁재는 권이진(1668∼1734)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과 그에 소속된 재실로 보문산 남쪽 기슭 아늑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뜻을 지닌 ‘유회(有懷)’는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제의 ‘명발불매 유회이인(明發不寐 有懷二人)’이라는 시에서 따온 말이다.
유회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건물로 활수담이라는 작은 연못 뒤쪽에 있습니다. 앞면과 양쪽 면에 난간이 돌려진 툇마루가 있고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경내 좌측에 있는 기궁재는 1920년에 중건된 재실건물로서, 자연석 기단과 덤벙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조선시대 말기의 건축양식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의 오량집이다.
이곳에는 유회당 권이진 선생이 아버지의 묘를 지키기 위해 지은 시묘소인 삼근정사와 선생의 문집이 보관되어 있는 장판각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대전광역시 중구 운남로85번길 32-18 (무수동)
●중구 제7경=단재 신채호선생 생가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생가지로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생가 입구에 큰 비석이 세워져 있고, 들어가는 입구에 보면 작은 원두막 하나와 오래된 초가집 한 채가 서 있다.
땅의 기운을 받아 위인이 나올만하게 산들이 생가를 감싸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어남동에 있는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지는 일제강점기에 언론인, 역사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민족의 자존심을 일깨웠던 단재 선생의 얼이 서린 곳입니다.
단재 신채호선생께서는 이곳에서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8살 때까지 살았다.
선생은 우리 역사를 고구려 중심으로 계승되는 역사 체계로 다시 세워 우리 역사가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고 만주대륙이 우리 민족의 영토였음을 밝힘으로써, 일제에 의해 만주로 강제 이주된 주민들과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큰 자긍심을 심어 주었다.
*대전광역시 중구 단재로229번길 47
●중구 제8경=여경암
무수동에 있는 여경암은 권이진 선생이 후손과 후학들의 교육 장소로 세운 건물로 송나라 사마온공이 교육을 위하여 세운 '여경사'라는 강당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여경암은 유회당 권이진(有懷堂 權以鎭, 1668~1734) 선생이 1715년(숙종 41)에 후손(後孫)과 후학(後學)들의 교육 장소로 세운 건물입니다. 여경암(餘慶菴)이라는 이름은 송(宋)나라 사마온공(司馬溫公)이 교육을 위하여 세운 여경사(餘慶寺)라는 강당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현재는 불당(佛堂)으로 사용하고 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인데, 좌우 뒤쪽으로 2칸씩 덧붙여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집이다.
*대전광역시 중구 운남로85번길 54-153
●중구제9경=창계숭절사
창계숭절사는 1923년 세운 사당으로 단종복위운동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박팽년(1417∼1456)과, 사육신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함께 복위운동을 도모했던 박심문(?∼1456) 선생을 모신 곳이다.
박팽년 선생은 조선 전기 문신으로 세종 17년(1434) 문과에 급제한 후 단종 2년(1453) 우승지를 거쳐 형조 참판이 되었으며 세조 1년(1455)에는 집현전의 관원이 되었다. 단종이 왕위를 빼앗기자 성삼문 등과 함께 단종복위운동을 펼치던 중 발각되어 심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숨을 거두었다.
박심문 선생 역시 조선 전기 문신으로 세종 18년(1436)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는 함길도 절도사인 김종서가 북방에 육진을 개척할 때 큰 공을 세웠으며 단종복위운동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성삼문 등 사육신의 참형 소식을 듣고 음독 자살하였다.
원래 정절서원(대전시 동구 가양동)에서 박팽년 선생을 비롯한 여러 분의 위패를 모셨으나 고종 8년(1871)에 서원이 헐려, 지금 있는 곳에 다시 사당을 세우고 두 분을 모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대둔산로137번길 67
●중구 제10경=거업재
무수동에 있는 거업재는 권이진 선생이 후손과 후학들의 교육 장소로 세운 건물로 '군자의 도를 배운다'라는 뜻을 지닌 서당이다.
거업재는 유회당 권이진(有懷堂 權以鎭, 1668~1734) 선생이 1715년(숙종 41)에 후손(後孫)과 후학(後學)들의 교육 장소로 세운 건물이다.
거업재(居業齋)는 "군자(君子)의 도(道)를 배운다."는 뜻을 지닌 서당(書堂) 건물로 오른쪽 2칸 대청은 여름 공부방, 왼쪽의 온돌방 2칸은 겨울철 공부방으로 각각 사용하였다.
*대전광역시 중구 운남로85번길 54-153
정리/한상민기자
저작권자 ⓒ BK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